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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일반정보/역사ㅣ민족ㅣ기후ㅣ교육ㅣ사회

방갈리들은 어떻게 무슬림화 되었는가?

방글라데시는 이슬람이 들어 오기 전 불교 국가였다.

BC 5세기 중엽부터 뱅갈지역 (브라마트라강 서쪽지방)은 마가다 왕조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이 무렵부터 불교가 전파되었다.

이어 마우리아 왕조와 쿠샨 왕조로 이어지면서 불교가 이 지역에서 크게 교세를 떨쳐 불교문화가 융성하였다.

그러나 AD 4세기 굽타왕조가 인도를 재통일 하면서 부라만 교를 국교로 정하여 불교가 일시 쇠퇴하였으나 AD 8세기경 팔라왕조가 성립되면서 불교는 비로서 전 뱅갈지역에 퍼지게 되었다.

 

1985년에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 된 방글라데시 불교 유적지는 세계에서 가장 큰 불교 수도원으로, 8세기 사울 왕조의 스리 호몰 팔 데브에 의해 세워졌다.

 

1204 회교도의 침입으로 불교가 왕성했던 팔라왕조가 멸망하고, 터키계 고리왕조가 성립되면서 터키계 회교도들에 의해 지배되어 왔다.

 

회교도가  도를 지배 했음에도  북인도와 뱅골지역만 무슬림화 되었을까?

누구나 가지는 의문이지만 그 어느곳에서도 명쾌한 답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 답을 현재의 방글라데시 보다는 사라진 불교에 답이 있는 듯 하다.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하나의 나라였던 인도, 초록색인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는 무슬림, 노랑색 스리랑카와 부탄은 불교, 그리고 청색인 메갈라야와 미조람, 메갈랜드, 아루노촐 쁘로데쉬는 크리스챤이 주를 이루는 지역이다.

 

 

일반적으로는 이슬람의 침략으로 방글라데시에서 불교가 사라지고 이슬람화 되었다고 주장을 한다

그러나 종교는 정치권력이라든지 무력에 의해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만일 그렇다면 같은 지배를 받아 온 중간에 위치한 현재 인도는 지역은 왜 이슬람화 되지 않았는가 라는 의문이 생긴다. 

실재로 뱅골지역에서 불교가 소멸  이유는 이슬람의 침략이라는 외부 요인보다는 불교 내부에 그 원인이 있었다.

 

고대로 인도의 주요 종교는 힌두교와 불교, 자이나교가 주를 이루었다.

이들 종교는 크게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을 나누는 것을 옹호하는 종교와 그렇지 않고 반대하는 종교로 나뉜다.

힌두교는 계급을 나누는 것을 옹호한 종교인 반면 불교는 그것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생겨난 종교이다.

당연히 구성원도 힌두는 지배계층이 주도권을 가진 종교였고, 불교는 천민 집단이 주를 이루는 종교였다.

 

힌두교는 주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따라서 매우 보수적이었고, 한국의 조선시대처럼 구성원의 신분 계급을 나누는 카스트가 강력하게 작용했으며, 주로 인도의 남쪽에 거주하였다.

반면 불교는 장사 등 상업 종사하는 사람이 많았고, 그래서 개방적이며 합리적인 사고방식과 신분 평등을 주창하였으며 주로 인도 북쪽 지방에 거주하였다.

두 종교는 이 뿐아니라 가장 큰 차이로 제가와 출가에 있었다.

힌두교는 농사 짓는 것이 생업이라 집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수도를 하는 형태를 띤 제가 종교였다.

그러나 불교는 사제들은 출가를 하고 신자들이 비즈니스로 벌어 들인 돈을 기부하여 사원이 유지되는 형태의 출가 종교였다.

 

 

인도에 이슬람은 서북쪽에서 터키계 아리안족이 침략하여 들어 왔다. 

그들은 불교도들의 동맥 줄이라 할 수 있는 유럽으로 이어지는 무역로를 차단했다. 

이슬람은 초기에 아주 배타적이었다.

그래서 실크로드를 통해서 무역을 했던 인도의 무역이 벽에 부딪이게 되었다.

 

상인들의 사업이  되어서 수입이 많아야 보시를 하고, 승려들이 그를 바탕으로 종교활동만 하는 불교에 위기가 찾아 온 것이다.

평민들이 육체활동을 해서 보시를 하면 승려들은 영적인 활동을 해서 영적, 정신적인 도움을 평민들에게 주는 구조였던 불교는 본래 출발은 매우 합리적이었다. 

바로 왕자로 태어났던 부처가 출가를  계기중에 하나가 사회 계급과 고뇌를 해결 하기 위해서였다.

 

마치 성경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일조를 안하니까 레위인들이 먹고 살길을 찾아 성전을 떠났고, 급기야 미가의 집에 개인 고용 제사장이  사례가 있듯이 승려들은 절을 떠나기 시작 한 것이다.

 

반면 힌두교는 재가 종교이고, 사제들이 제사를 지내고, 각종 제사들을 집행하며 보시를 받아서 생활하는 구조였.

사실 불교와 달리 힌두교는 매우 비합리적인 종교였다.

예를 들어 사띠라는 제의가 있는데 남편이 먼저 죽으면 부인이 따라서 죽는 제의가 있었는데, 그 때 부인은 자신의 온갖 물을 치장하고 산체로 불에 태워져 죽었다. 그러면 열반한다고 사제들은 말하며 사띠를 부추겼다. 이 때 재와 함께 남은 패물은 제의를 집행한 사제의 몫이다. 그래서 이 악날한 비 인간적인 행위인 과부를 산 채로 화장하는 사띠를 사제들은 부추겨서 잇속을 챙겼고, 산 사람들 또한 입을 하나 줄일 수 있어서 계산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물론 오늘날은 법으로 금지 되어 있는 악한 제의이다.

 

힌두교 사띠 제의 모습

 

교회도 합리적인 교회는 명목 헌금이 .

입시나 승진  다급한 일을 앞두고 있을  팥죽을 드려야 한다며 꼬들기는 목사들이 예전에는 가끔 있었다.

그런  합리적인 교회는 대부분 이단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불교가 어려움에 처하자 일부 불교도들은 힌두교를 따라하기 시작 했다.

그러나 힌두교가 될 수는 없었다. 힌두교는 강력한 카스트제도가 자리잡고 있었기때문에 힌두가 되려면 가장 낮은 계급으로 힌두교가 되어야 하는데 그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힌두교에는 그들의 설자리가 전혀 없었다.

 

 때에 이슬람이 들어와서

이슬람은 알라만 믿으면 모두 평등하다는 사상폈는데 이는 불교와 같은 평등 사상이었다.

불교가  쓰러져 가는데 이슬람이 들어와서 손가락으로 살짝 미니까 완전이 넘어간 꼴이.

그래서 불교가 완전히 이슬람화 되어 버린 것이다.

 

 

반면 주로 남부에 위치한 제가 종교인 힌두교는 이슬람의 지배에도 불구하고 자기종교를 오늘날까지 굳게 유지하고 있다.

불교의 종주국인 인도에는 현재 오리지날 불교도는 없다고 한다.

중국을 통해 한국에 전래 된 불교는 인도에서와 달리 제가 불교로 자리잡게 되었고, 본래의 문화를 유지하는 불교는 스리랑카와 미얀마 태국 등에 자리잡게 되었다.

 

자기 밥그릇을 챙길 줄 아는 자만 살아 남았다.

 

 

글 쓴이 이석봉 원장